사주가이드#1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사주

Mr.대산 | 2017-10-03 15:31:55

조회수 : 1,695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 (Yurii Alekseevich Gagarin) 우주비행사
 
생몰 1934년 3월 9일(러시아) ~ 1968년 3월 27일 | 개띠, 물고기자리
 
양 력: 1934년 3월 9일 06:30
음/평: 1934년 1월 24일 06:30 남자
 
시 일 월 년
丁 己 丁 甲
卯 卯 卯 戌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戊 대운: 순행
子 亥 戌 酉 申 未 午 巳 辰
89 79 69 59 49 39 29 19 9.4
 
대운 시작: 9세 4월 22일
양 력: 1934년 3월 9일 20:20
음/평: 1934년 1월 24일 20:20 남자
 
시 일 월 년
甲 己 丁 甲
戌 卯 卯 戌
 
丙 乙 甲 癸 壬 辛 庚 己 戊 대운: 순행
子 亥 戌 酉 申 未 午 巳 辰
89 79 69 59 49 39 29 19 9.2
 
대운 시작: 9세 2월 9일
 
출생시가 정확치 않음, 06:30, 20:00, 20:20, 등 여러 설이 있음.
1957년(23세, 己巳대운 丁酉년)에 결혼하여 두 딸 생산.
1961년(27세, 己巳대운 辛丑년) 4월 12일에 인류 시초로 우주비행 함.
1968년(35세, 庚午대운 戊申년). 3월 27일 시험비행 중 추락사.
 
 
 
유리 가가린 우주비행 한적 없다 진위논란 “추락사 미스터리 여전히 오리무중”
2011-12-11
유리 가가린, 정말 소련에 철저히 이용당한 것일까?
 
12월 11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소련 최초 우주 비행사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훗날 소련에 철저히 이용당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품게 한 비행사 유리 가가린에 대한 비화가 공개됐다. 1961년 5월 유인 우주비행을 하겠다고 발표한 미국에 소련은 유인 우주 비행까지 미국에게 쫓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국보다 한 달 빠른 4월로 우주비행 일정을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유리 가가린은 20명의 우주 행사 후보 중 최종 우주 비행사로 낙점됐다. 유리 가가린은 1961년 4월 12일 소련 유인우주선 보스토크 1호에 몸을 실었고 우주에 돌입한지 108분 후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유리 가가린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이 성공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유리 가가린은 세계 최초 우주인으로 국가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소련 정부는 유리 가가린을 러시아 자랑으로 치켜세우며 정치적 홍보수단으로 사용했고 유리 가가린 얼굴이 담긴 각종 기념품까지 제작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후 유리 가가린은 2번째 우주비행을 준비하던 훈련비행중 사고로 추락사한다. 문제는 소련이 유리 가가린 사망 원인과 비행기 잔해 등을 모두 1급 비밀에 부쳤던 것. 유리 가가린 추락사 소문은 무성해 졌지만 정부의 해명은 의혹만을 남겼다. 1990년,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한 적이 없다는 놀라운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보다 먼저 우주비행을 하고자 했던 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포섭, 그가 우주비행을 다녀온 것 처럼 모든 자료들을 꾸몄다는 것이다. 실제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했다고 믿을만한 자료는 없다. 유리 가가린 비행 사진이 한 장도 없는데다가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성공하기도 전에 폴란드 공산당 기관지의 기사에는 유리 가가린 성공소식 기사가 실렸다.
 
이에 재조사를 착수한 러시아 공군 측은 "유리 가가린 전투기가 밀폐장치 이상으로 사고가 났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유리 가가린 추락 비행기 잔해부터 당시 수사 기록까지 모든 자료들은 역시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유리 가가린, 정치적 희생양인지 아니면 인류 최초 우주 비행사가 맞는지는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의혹만 남겨주고 있다.
 
 
 
<인류 첫 우주인 유리 가가린 유서 공개> 2011/04/12
 
우주비행 이틀전 아내 발렌티나에게 남긴 편지
"내가 죽더라도 너무 슬퍼말라..애들 강하게 키워라"
부인, 1968년 가가린이 비행사고로 숨진 뒤 읽어
 
12일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 지 50주년이 되는 가운데 가가린이 우주 비행에 나서기 이틀 전 부인에게 남겼던 유서가 공개됐다. 현지 일간 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이날 가가린의 유서를 전재하면서 이 문서가 근 10년 전에 비밀 해제됐지만 당시에는 일부 전문 출판물에만 게재됐었다고 밝혔다.
 
가가린은 유서에서 우주비행을 떠나는 복잡한 심정과 부인과 어린 두 딸에 대한 애정, 자신이 숨질 경우에 대비한 당부 등을 절절하게 적었다. 23세 때인 1957년 발렌티나 고랴체바와 결혼한 가가린은 1961년 우주비행에 앞서 옐레나와 갈리나 등 어린 두 딸을 두고 있었다. 가가린은 유서 서두에서 부인과 두 딸의 이름을 '발레치카(발렌티나)', '레노치카(옐레나)', '갈로치카(갈리나)' 등의 애칭으로 다정하게 부르면서 "오늘 내게 다가온 기쁨과 행복을 함께 나누려고 몇 줄을 쓰기로 결심했다"면서 글을 시작했다.
 
그는 "오늘 정부 위원회가 나를 처음으로 우주로 보내기로 결정했으며, 평범한 사람에게 우주로의 첫번째 길 개척이란 엄청난 국가적 과제를 맡겼다"며 "이보다 더 큰 일을 꿈꿀 순 없을 것"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했다. 그는 "하루 뒤면 (우주로) 출발해야 하며 그전에 당신과 아이들과 조금이라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그렇지만 나는 항상 당신과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애정을 표시했다.
 
가가린은 이어 "나는 기계를 전적으로 믿으며 그것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평지에서도 넘어져 목이 부러지기도 하는 만큼 내게도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사고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는 "만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무엇보다 발류샤(발렌티나의 다른 애칭) 당신이 너무 슬픔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인생은 인생이며 누구도 내일 자동차에 치어 죽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딸들을 잘 지키고 사랑해달라. 애들을 나약한 '마마걸'로 키우지 말고 인생의 굴곡을 무서워하지 않는 진정한 인간으로 키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도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대로 삶을 꾸려 나가라"면서 "당신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으며 그럴 권리도 없다"고 말했다. 인류 첫 우주인은 "이 편지를 당신이 끝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표시하면서 "(나중에) 나도 (이 편지를 보면) 일시적인 나약함에 스스로 부끄러워질 것"이라고 적었다.
 
가가린은 마지막으로 "내 부모들을 잊지 말고 가능한한 어떻게든 도와주라"고 당부하면서 "부모님들 께 안부를 전하고 어쩔 수 없긴 했지만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도록 한 데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처럼 애절한 유서를 남겼던 가가린은 다행히 108분간의 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으나 그로부터 7년 뒤인 1968년 3월 훈련 비행 도중 전투기 추락 사고로 의외의 죽음을 맞았다. 부인 발렌티나는 가가린이 썼던 유서를 그가 사망하고 나서 읽게 됐다고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전했다.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Ю́рий Алексе́евич Гага́рин 영어:Yuri Alexeyević Gagarin) (1934년 3월 9일 - 1968년 3월 27일)은 옛 소비에트 연방(소련)의 우주비행사, 군인으로, 1961년 4월 12일에 인류로서는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을 하였다.
 
가가린은 그 공적으로 각국으로부터 메달을 수상하였다. 1968년 3월 27일, 비행 훈련 중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편집] 생애
가가린은 1934년 3월 9일 스몰렌스크의 집단 농장에서 출생하였다. 사라토프 공업학교 재학 때, 항공 클럽에서 비행 기술을 배운 뒤 오렌부르크의 공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였다.
 
1961년 4월 12일 인공 위성 보스토크 1호로 무중력 상태의 우주권에 돌입하여 187마일의 고공에서 시속 1만 8,000 마일(28968 Km/h) 속도로 1시간 48분 동안 지구를 일주한 뒤 예정지에 귀착하여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다. "지구는 푸른 빛깔이었다"고 한 그의 말은 유명하다.
 
가가린은 우주 비행 뒤 소령으로 특진하였으나 이후 1968년 3월 27일 미코얀구레비치 MiG-15의 시험 비행 훈련 중에 연습기 추락으로 사망하였다.[1]
 
[편집] 우주 비행
[편집] 선발과 훈련
1961년 4월 12일, 가가린은 보스토크 3KA-2 (보스토크 1) 안에서 우주를 비행하고 돌아온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비행시 그의 호출부호(콜사인)는 'Kedr(히말라야 삼목)'이었다.[2] 비행하는 동안 가가린은 '조국은 듣고, 조국은 안다(러시아어:Родина слышит, Родина знает)'라는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었다.[3]
 
 
출처 : 사주명리 - cafe.daum.net/sajusaj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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