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 풍수는 모자이크(mosaic)다 ① /권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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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리과 시험과목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고려시대 시험과목으로 지정된 서적들은 당시 중국에서 발간된 풍수서와도 엄연히 구분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자적인 풍수서가 공유되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지리전문가를 선발할 만큼의 전문적인 풍수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고려시대 풍수의 내용이 조선시대 유행하고 있었던 중국의 이론풍수와 구별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과연 그 내용이 무엇이었을까를 구체적으로 정리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고려시대 자생풍수, 조선시대 중국 이론풍수
이들 고려시대 풍수서 중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서책이 한권도 없다는 이유가 일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풍수서적만이 아닌 여타의 문헌자료나 물리적 경관, 장소 등을 통해 고려시대 풍수의 특징을 일면 재구성해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루는 것으로 한다.
고려시대의 풍수의 특징을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다고 해서 조선시대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조선시대 시험과목으로 정해져 있던 풍수서책 중 상당수는 현재 시점에서도 충분히 접할 수 있으며 심지어 여러 종류가 번역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위 중국의 이론풍수에 속하는 이들 서책들은 ‘명당(明堂)’이라는 독특한 장소를 찾거나 만들기 위한 술법류들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풍수를 언급할 때 거의 자동적으로 거론하는 표현중의 하나가 명당임을 볼 때, 이러한 중국 이론풍수의 영향은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그 위력을 엄청나게 발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중국의 이론풍수를 ‘명당풍수(明堂風水)’라고 구분하고자 한다.
이론풍수 명당 만들기에 초점 지금까지 영향
그럴 때 고려시대의 풍수는 명당 찾기와 관련된 명당풍수라기보다는 국토 전체적 차원에서 부족한 지점에 인위적 처방을 하는 ‘비보풍수(裨補風水)’가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산천으로 대변되는 국토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삶의 주기를 가지는 동시에 허약한 급소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처방을 강조하는 풍수가 특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고려시대의 삼경제(三京制)라는 것도 국토의 중심인 수도의 기운을 유지하기 위해 도읍을 세 개 정해놓고 국왕이 어가를 옮기면서 정기적으로 도읍 두 개를 쉬게 하는 방법이었다. 또 허약한 급소 지점에는 인위적으로 사찰을 세워 비보하는 방법을 썼고,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찰은 국가 비보사찰로 국가 공식문서에 등재되어 갖가지 혜택을 누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풍수를 간략히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풍수가 한 종류일 것이라는 대 전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즉 조선시대 풍수가 ‘좋은 땅(?)’이라고 하는 명당 찾기와 관련된 ‘명당풍수’라고 한다면, 고려시대의 ‘비보풍수’는 국토 전체적 차원에서 오히려 무언가 허약한 급소, 즉 ‘좋지 않은 땅(?)’을 관심 갖는 풍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시대 풍수의 특징 중 하나를 비보풍수라고 하면 흔히 촌락의 자연마을 단위나 도시, 도읍 등에서 확인되는 비보풍수를 떠 올릴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을 입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숲, 언덕, 우물, 돌탑 등을 비보물(裨補物)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들 비보물들은 촌락이나 도시를 명당으로 보고 명당을 형성하는 주변 조건들 중 무언가 부족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보충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명당풍수를 전제로 한 상태에서 비보풍수를 관련짓는 것이다.
가령 마을이 누워 있는 소의 형국에 기댈 경우 소의 먹이통에 해당하는 구시(구유)의 상징으로 마을 입구에 연못을 판다는가, 마을 주변 산세의 불기운(火氣)을 막고자 대나무 숲을 조성하거나 돌탑을 세우는 예가 그것이다.(그림 2)
이것은 같은 비보풍수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시대, 어떤 공간 단위에 적
용되는지에 따라 그 성격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시대의 차이에 따라 그리고 일면 풍수 내용과 관련해 풍수를 자생풍수와 이론풍수, 비보풍수와 명당풍수 등으로 구분해 보았다. 이렇듯 풍수는 시대의 흐름, 그것이 관련되는 공간 단위, 그리고 풍수를 이용하는 인간 주체에 따라 그 모습이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다양한 풍수 조각들이 마치 정리되지 않은 모자이크처럼 현재 우리의 눈앞에 뒤섞여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풍수가 뒤섞여 있고 복잡하게 보인다는 사실이 풍수에 대한 자의적 판단의 조건이 되지는 못한다.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간에. 더욱이 풍수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나 해석이 지나치게 자기 주관적인 경험에 바탕 둔 것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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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정 : 서울대학교 및 동대학원,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지리학 전공(교육학박사). 현재 한남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저서로 '풍수 그 삶의 지리, 생명의 지리'(공동), '대덕의 풍수', '풍수로 금산을 읽는다' 등이 있음. |
출처 : [풍수] 풍수는 모자이크(mosaic)다 ① /권선정 - cafe.daum.net/dur6f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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