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회원가입 | 마이페이지 |  0점 |  0원 | 즐겨찾기 
공지
원제역학연구원 홈페이지 오픈 (10)

09.20 (금)

가입인사
close
HOME > 회원자료공유 > 양택의 개요 및 원리

본 게시판은 회원이 직접 올린 회원간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판입니다. 저작권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자료는 가급적이면 올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작권 보호요청 : 회원이 올린 게시글 중 저작권에 위배되는 게시글이 있을 경우 연락주시면 확인 후 삭제조치 하겠습니다.

출장안마,출장마사지,바나나출장안마이미지출장안마출장마사지출장안마출장마사지
게시물 2,246건
   
경순왕릉과 산릉제향
좋은생각 2017-09-28 (목) 14:24 조회 : 2107


한 국가 지도자나 군 통수권자의 판단과 명령은 무고한 인명의 생사와 직결될 때가 적지 않다. 더구나 그것이 국운을 좌우하고 수많은 백성의 생존 여부와 연관되는 일이라면 더욱 심각해지고 만다. 이처럼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위기 순간에 냉철한 이성으로 올바른 판단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저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거기에는 후일의 역사적 심판과 평가가 뒤따르게 되어 있다.

서기 935년 신라 마지막 임금 제56대 경순왕(897∼978)이 나라를 고려에 넘겨준 사건을 놓고 지금까지도 이론이 분분하다. 사학계에서조차 평가가 엇갈려 있다. ▲임금의 자리에서 제대로 한번 싸워 보지도 않고 어떻게 천년사직을 고스란히 넘겨줄 수가 있느냐는 문책론을 내세워 패국군주(敗國君主)로 못박는가 하면 ▲이미 국운이 쇠락하여 대항해 보았자 승산 없는 싸움인데 아까운 군졸과 백성들을 잃지 않고 항복하길 잘했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능의 기단인 당판 아래 도툼하게 올라온 전순(前脣). 왕릉 앞에는 조영된 것이 많으나 자연이 빚어 놓은 전순은 대단한 길격이다.


이에 대한 경주김씨(경순왕 후손) 후예들의 의견은 한결같다. ▲무심한 일부 사학자들이나 세인들은 ‘항복’이라고 표현하나 그것은 결코 항복이 아니고 반드시 손국(遜國) 또는 양국(讓國)으로 불러야 하며 ▲군왕의 권위를 생각하기 이전에 먼저 민생을 염려하여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난 높은 뜻을 올바로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순왕은 927년 경주 포석정에서 여흥을 즐기고 있던 55대 경애왕이 견훤군 습격으로 시해된 뒤 왕위에 오른다. 우리 한반도 역사 중 유일한 전국시대였던 당시 상황은 이미 ‘신라의 때’는 아니었다. 지방 호족의 창궐로 영토 대부분을 상실한 상태였고, 왕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살육으로 기강이 무너져 왕명조차 짓밟히기 일쑤였다.

이런 풍전등화의 내우외환 속에서 경순왕은 장남 마의태자를 비롯한 일부 신하들의 극력 반대를 무릅쓰고 자진 망국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왕위에 앉힌 견훤을 마다하고 도량이 후덕한 왕건에게 나라를 넘겼다. 경순왕이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고려에 귀의할 때 향거(香車)와 보마(寶馬)가 30여 리에 뻗쳤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왕건은 경순왕 김부(金傅)를 태자위에 해당하는 정승공에 봉했고 경주를 식읍으로 내주었다. 김부의 원장(員將)들을 모두 채용해 고려에 귀속시키는가 하면 큰딸 낙랑공주와 혼인토록 하여 부마로 삼았다. 그 후 경순왕은 신라가 망한 뒤로도 43년을 더 살다가 고려 제5대 경종 3년(978) 4월4일 8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신라를 통치했던 당시 왕들의 능은 모두가 경주 권역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경순왕릉은 경주 밖에 있다. 민통선 인근인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산 18-1번지. 곳곳의 높다란 철조망과 함께 지뢰밭임을 알리는 빨간 표식이 분단국의 비애를 여지없이 실감케 한다. 이곳 고랑포는 1968년 1·21사태 때 북한군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택했던 침투로였고 능 뒤가 남방한계선이다. 노구를 이끌고 취재에 동행해 준 한국풍수지리중앙회 거봉 김혁규 회장과 임원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단출한 능 앞의 석물들. 곡장(曲墻)과 함께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고려 왕실의 따뜻한 배려로 천년 길지를 잡아 안장한 덕택일까. 능역에 들어서니 마치 어머니의 치마폭에 안긴 듯이 안온하고 푸근하다.

“기록에는 계좌(북에서 동으로 15도) 정향(남에서 서로 15도)으로 나타나 있는데 현재 상석이 놓인 방향은 축좌(북에서 동으로 30도) 미향(남에서 서로 30도)입니다. 후일 능을 사초하면서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 이럴 때는 계좌 정향으로 봐야지요.”

거봉의 설명에 박동일(72·연천향교 전장) 경순왕릉 문화해설사도 동감한다. 15도의 차이지만 득수와 파구가 달라져 후손들에게 미치는 발복 여부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하관할 때 적용하는 재혈과 분금에서는 더욱 정교함을 요하는 것이 풍수라는 학문이다.

“간향(艮向·동에서 북으로 45도) 입수룡(入首龍)에 을득수(乙得水) 미파구(未破口)니 길격을 갖춘 영화지지입니다. 특히 백호가 전순(前脣·묘 앞의 입술처럼 두드러진 둔덕)을 환포하며 수구(水口)까지 막아 주고 그 뒤를 임진강이 휘감아 돌았어요. 저 국세가 바로 금대(錦帶)입니다. 장손보다는 지손과 함께 외손의 발복이 두드러졌을 겁니다.”

왼쪽 청룡 방향의 파수(破水)가 월견수(어깨너머로 비치는 물)나 당문파(묘 앞에서 직사로 빠져 나가는 물)가 아니어서 지기 영향도 오래갈 것이란 국세 풀이다.

문득 도선국사 이전의 풍수형태는 어떠했을지 궁금해졌다.

◇산릉제향 시 필요한 제기와 제복을 보관해 두는 재실. (왼쪽)◇경순왕릉 비각.


“우리나라에 풍수가 전래되기 전에는 ‘밀교법(密敎法)’으로 산을 판단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흙을 파서 색깔을 본다거나 맛을 보고 가늠해 내기도 했어요. 때로는 계란을 묻어 두었다가 곯지 않으면 좋은 땅으로 알고 묘를 썼고, 유불선 삼교에서는 기(氣)를 찾아 음택과 양택을 구분해 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사례는 고대 왕릉의 조성 양태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경주 인근의 신라 왕릉 상당수가 황토에 평지분으로 용사되어 있음도 무관치 않다.

경순왕릉은 임진왜란 이후 오랜 세월 실전되었다가 영조 24년(1748) ‘敬順大王藏地(경순대왕장지)’라는 지석(誌石·장사 지낼 때 함께 묻는 표지석)과 함께 영역을 찾아내 새로 조영한 것이다. 원형의 봉분 하단에 둘레석을 돌렸고 상석, 장명등, 표석, 석양 1쌍, 망주석 2기가 배치돼 있는데 대부분 조선 후기 양식이다. 1975년 문화재 사적 제244호로 지정하여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

능 왼쪽 아래에는 백옥비석이 비각 안에 있다. 세월의 풍우에 씻겨 비문은 판독할 수 없으나 거대한 백옥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고가라 한다. 능 입구에는 재실(제기와 제복을 보관하는 곳)이 있다. 그러고 보니 20일(음 4월4일)이 경순왕의 제향일이다.

시조 묘의 제사나 임금의 능 제향은 기일(忌日)이 아니더라도 후손들이 별도로 날을 정해 모셔도 허물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신라나 고려 왕 후손들이 산릉제향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지파별로 추진되고도 있다. 이 같은 전례문화의 복고 현상이 첨단과학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과 무관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조선왕조의 역대 임금과 왕비에 대한 제례인 종묘대제는 유네스코 선정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2001년 5월18일)되었고 그 종묘제례(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를 축소시킨 것이 바로 산릉제향이기 때문이다. 산릉제향 봉행 시 아헌관(두 번째 잔을 올리는 제관)은 왕비 문중의 대표가 헌작하고 있어 예법을 모르고 있다가 당황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아 왔다.

산릉제향은 봉심(奉審)으로부터 시작된다. 제향 1∼2일 전 종손이나 초헌관이 능에 직접 올라 살피는 것으로, 반드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면서 봉분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절차다. 이 봉심례는 사가례(私家禮)에도 그대로 적용돼 제사 지내기 전 반드시 묘를 한 번 둘러보는 것이 합당한 예의다.

산릉제향은 15명의 제관이 드리는 임금에 대한 제례이며 ① 초헌관 ② 아헌관 ③ 종헌관 ④ 감제 ⑤ 집례 ⑥ 대축 ⑦ 내봉작 ⑧ 외봉작 ⑨ 좌전작 ⑩ 우전작 ⑪ 봉로 ⑫ 봉향 ⑬ 사준 ⑭ 봉등 ⑮ 찬의로 구성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봉작과 외봉작을, 봉로와 봉향을 한 명이 겸할 수도 있어 13명으로도 가능하다. 제향 수일 전 습의(習儀) 과정을 통해 충분히 예행연습을 하므로 누구에게 임무가 주어져도 감당해 낼 수가 있다.

다만 ▲공수법(拱手法·오른손으로 왼손 엄지를 잡고 왼손가락이 오른손 등을 덮어 배꼽에 가볍게 대는 것) ▲보법(步法·두 손을 공수한 채 머리를 조금 숙여 앞사람 발뒤꿈치를 보며 반보로 걷는 것) ▲승강계법(昇降階法·계단을 오를 때는 오른발 먼저 올려 왼발 합치고 내려갈 때는 왼발 먼저 내려 오른발 합치는 것. 이를 연보합보라고도 함) ▲문 출입법(들어갈 때는 동쪽문, 나올 때는 서쪽문, 중문은 신문(神門)이라 하여 축함이나 제수만 출입할 수 있음) ▲부복법(俯伏法·무릎을 꿇고 앉아 양손을 여덟팔 자로 짚고 팔은 편 채 고개는 다소곳이 숙인 자세) 등을 미리 알아두면 능 제향 참반 시 옆사람의 눈치를 안 살펴도 된다.

이때 모든 동작은 집례의 창홀(唱笏·제향 순서를 적은 홀기를 부르는 것)이 끝난 뒤 시작하며 절할 때는 반드시 안경을 벗는다. 왕릉은 4배, 왕자나 군의 묘에는 재배한다. 왕의 묘는 산릉(山陵), 왕세자는 원소(園所), 일반 묘는 산소(山所)라 불러왔다.

임진북 예성남정맥의 대맥인 성거산 한 줄기가 서남쪽으로 흘러내리며 명혈지지를 작국(作局)해 놓았다는 경순왕릉.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77년이 지났건만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비각 안의 백옥비석. 풍우에 마모돼 판독할 수 없다.


시인·온세종교신문 발행인
 
 
ⓒ 세계일보&세계닷컴(www.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계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세계일보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출처 :서라벌의 별 원문보기   글쓴이 : STERN




   

게시물 2,246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56
도로 모이는 곳이 최고 吉地 좋은 터 잡기… “아침 햇볕 받는 곳이 좋은 곳” 풍수학은 음택(陰宅)과 양택(陽宅)…
좋은생각 09-28 2450
355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율곡 이이, 송강 정철과 친구 …
좋은생각 09-28 2429
354
 뉴욕에 본사를 둔 경영컨설팅기업 맥킨지 앤 컴퍼니는 1986년 홍콩에 지점을 개설할 당시 건물, 층수, 사무실 등…
좋은생각 09-28 2230
353
역사에 기록된 풍수지리의 속이는 재주   - 신라 초기부터 시작된 사술(詐術)적 풍수지리 -   朝鮮…
좋은생각 09-28 1922
352
[이규원 객원전문기자의 대한민국 통맥풍수] <24>계룡산 신흥암과 사찰풍수   좌청룡·우백호·…
좋은생각 09-28 2942
351
송정공파 표옹 송영구 고택('Daum카페 진천송씨'에서 퍼옴) | 진천송씨 교하공파(송씨족보 등) 2004.11.03 17:28 송형규(…
좋은생각 09-28 4155
350
[한국의 명가 명택] 경남 거창 정온(鄭蘊 )종택 혁명 기상 충만한 强骨 집안 ‘금색 원숭이의 정기가 뭉쳐 있다’…
좋은생각 09-28 2811
349
[한국의 명가 명택 ] 강릉 선교장 (船橋莊) 仙風이 깃든 한국 최고의 장원 건물 10동에 총 120여 칸의 규모를 자랑하…
좋은생각 09-28 2888
348
[한국의 명가 명택]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古宅 역사.인물 2005/05/22 12:57 http://blog.naver.com/joba34/140013167777 [한국의 …
좋은생각 09-28 2535
347
[한국의 명가 명택 ] 남원 몽심재 (夢心齋) 원불교 성직자 40여 명 배출한 명당 우백호보다 좌청룡이 훨씬 길고 튼…
좋은생각 09-28 2260
346
(떠나자! 삶의 터전 속으로)한국 정신문화의 고향 안동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중요민속자료 제122…
좋은생각 09-28 1768
345
20여년 전, 당시 노량진성당 임응승 신부가 버드나무 가지와 추를 이용해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수맥을 찾아낸다 …
좋은생각 09-28 2498
344
한 국가 지도자나 군 통수권자의 판단과 명령은 무고한 인명의 생사와 직결될 때가 적지 않다. 더구나 그것…
좋은생각 09-28 2108
343
-풍수를 위해 지켜야할 40가지- <침실> 1. 잠자는 방향은 침실 창문 쪽이 최고다 침실에서 중요한 것은 잠자는 …
좋은생각 09-28 2262
342
가구의 배치나 창문의 방향, 패브릭의 컬러 등에 따라서 가정의 운도 달라진다는 ‘풍수법’. 풍수 이론…
좋은생각 09-28 2114
   121  122  123  124  125  126  127  128  129  130    
회원자료공유방
문의/상담 02-569-9194
               평일 오전 10시~오후7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계좌번호 국민 097-21-0310-100 (임정환)


09-19 윤서* (女) 사주
09-18 김상* (男) 사주
09-16 염석* (男) 사주
09-14 반혜* (女) 택일
09-13 이종* (男) 사주
09-12 윤송* (女) 사주
09-12 김호* (男) 궁합
09-10 박현* (男) 택일
09-09 박서* (女) 육효
09-09 한재* (男) 사주
상담후기
상담후기 적극추천
박진우 | 조회수 : 3408
도서 구입 (1) 적극추천
한지민 | 조회수 : 276358
우리들의 얼굴 적극추천
이성민 | 조회수 : 20714
안녕하세요 적극추천
김수향 | 조회수 : 8343
감사합니다 적극추천
김지은 | 조회수 : 10806
+
계보의 중요성 한국역학의 계보
자강 이석영 선생(1920-1983)
1920년 평안북도 삭주 출생
청주대 법대 졸업
사주첩경의 저자
한국역학교육학원의 창립자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벽천 김석환 선생(1933-2016)
1933년 출생
중앙대 법대 졸업
故 자강 이석영선생님의 계승자
한국역학교육학원 원장
한국역학인총회 총재
前 한국 역학계의 태두(泰斗)
원제 임정환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벽천 김석환 선생 사사
한국역학교육학원 강사역임
MBC 문화센터 강사 역임
한국역학인총회 사무총장
前 동방대학원 박사과정 교수
기억에 남는 상담 에피소드
역학인, 그 거짓과 진실 [328357] (4)
사주를 상담하여 줄 수는 있으나 교훈은 줄 수 없는 경우 [320181] (2)
사이비 역술인의 폐해 [221819]
사주를 무조건 부정하던 경우 [323976] (1)
사주를 보면서 해줄 말이 없는 경우 [329583] (2)
사주가 맞지 않는 경우들 [326891] (2)
아들의 외고합격 [342304] (2)
젊은 여성의 임신 [280289] (1)
재벌 회장의 사주 [336002] (2)
유명가수의 사주 [331213] (1)
보험설계사 [33753]
이혼상담(마인드가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358319] (4)
결혼(역학을 배우면 운명이 바뀐다.) [347916] (4)
저서

제대로보는
야학노인점복전서
전2권 세트


제대로보는
적천수천미
전4권 세트


제대로보는
명리약언
전1권


제대로보는
궁통보감
전2권


제대로보는
자평진전
전2권

동영상강의

사주초급반

사주중급반

사주전문가반

육효반

신수작괘반

성명학반
잘못 알고있는 역학상식
찾아오시는 길

select sum(IF(mb_id<>'',1,0)) as mb_cnt, count(*) as total_cnt from g4_login where mb_id <> 'admin'

145 : Table './wonje2017/g4_login'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

error file : /bbs/board.php